할아버지와 함께(1950년대) 개인소장

강민선 할머니(1950년대) 개인소장
할머니 방 한편을 차지하고 있던 오래된 장롱을 기억하시나요? 할머니와 동고동락했던 세월만큼 켜켜이 쌓인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장롱 안에는 우리가 모르는 할머니의 시간이 잠들어 있습니다. 한때 할머니의 일상을 함께 했던 장롱 속 한복들은 빠르게 변해버린 생활 양식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게 되었고, 그대로 장롱 속에 봉인되어 잊혀졌습니다.
1932년 태어난 강민선 할머니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까지, 한국의 근현대사를 모두 겪은 세대입니다. 개항 이후 서구 문물이 들어오면서 소개된 양복은 관료나 상류층 남성의 예복으로 자리 잡았고, 한복은 일상복으로 오랜 시간 그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여성 교육이 시작되면서 조금씩 개량되었던 치마·저고리는 한국전쟁 이후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일상복의 지위를 양복에 내어주며 60년대 이후 서서히 예복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할머니의 한복은 50~70년대 착용한 것으로 집에 침모(針母)를 두고 할아버지가 직접 사 오신 옷감으로 옷을 지었다고 합니다. 치마와 저고리를 다른 색으로 배색했던 전통 한복과 달리 할머니의 한복은 상하를 모두 같은 옷감으로 지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1930년대부터 상하를 같은 색으로 맞춘 옷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양장에서 비롯된 이러한 유행은 세련되고 정돈된 느낌을 준다고 인식되어 80년대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자유부인(1956) 한국영상자료원

표류도(1960) 한국영상자료원
1980년대 이후 실내 난방이 발전하면서 사철깨끼가 유행하기 전까지 한복은 계절에 맞춰 옷감을 선택하였습니다. 할머니의 한복 역시 계절에 따라 다양한 옷감을 사용했습니다. 봄·가을에는 날염으로 무늬를 화려하게 프린트 한 옷을, 여름에는 얇은 흰색 옷감에 흰색으로 수를 놓아 청량감 있는 한복을 많이 입었습니다. 겨울에는 두툼한 단직물을 애용했는데, 전통적인 무늬에서 벗어나 과감하고 다양한 무늬를 넣어 당시 유행했던 현대적인 미감을 보여줍니다.

할아버지와 함께(1950년대) 개인소장
이번 전시는 몇 해 전에 기증받은 자개농 속에 가득 차 있던 한복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되었습니다. 근래 들어 근현대 한복의 기증이 증가하는 추세로, 한복을 일상으로 입었던 마지막 세대가 고령으로 접어듦에 따라 오랫동안 장롱 속에 잠들어 있던 옷이 다시 세상에 나오고 있습니다.

<강민선 할머니의 장롱에서 나온 옷>에서는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일상에서 착용했던 한복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시대를 재조명해 보고자 합니다.